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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반도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주식이 올랐다 내렸다는 말에만 고개를 끄덕이다 조용히 대화에서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트랜지스터 수백만 개를 손톱만 한 칩에 집적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전혀 몰랐죠. 이번에 반도체 8대 공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쫓아가며 정리해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각 단계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8대 공정 - 모래에서 시작되는 웨이퍼, 반도체의 첫 출발점
반도체의 원료가 모래라는 사실은 저도 처음엔 믿기 어려웠습니다. 모래에서 실리콘(Si)만 걸러내고, 그걸 고온에서 녹여 인 곳(Ingot)이라는 단결정 실리콘 기둥을 만드는 것이 시작입니다. 여기서 잉곳이란, 불순물 없이 균일한 결정 구조를 가진 실리콘 기둥을 말하는데, 이 기둥을 다이아몬드 톱으로 얇게 잘라낸 원판이 바로 웨이퍼(Wafer)입니다.
중요한 건 지름은 크게, 두께는 얇게 만드는 것입니다. 같은 지름의 웨이퍼에서 더 많은 칩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주력 규격인 300mm 웨이퍼는 AI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면서 공급 부족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습니다.
절단 후에는 표면을 원자 수준까지 매끄럽게 연마하는 CMP(화학기계적 연마) 공정을 거칩니다. 여기서 CMP란 화학반응과 물리적 마찰을 동시에 이용해 웨이퍼 표면의 요철을 수나노미터 수준으로 평탄화하는 기술입니다. 이 단계가 부실하면 이후 회로 형성 정밀도 전체가 무너집니다.
글로벌 웨이퍼 시장은 소수 기업이 과점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에츠(약 30%)와 섬코(약 25%)가 시장을 양분하고, 한국의 SK실트론이 약 12%로 글로벌 3~4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SEMI 글로벌 반도체 소재 리포트).
- 실리콘 정제 → 인곳 성장 → 웨이퍼 절단 → CMP 연마 순으로 진행
- 300mm 웨이퍼가 현재 AI·데이터센터 수요를 받치는 핵심 규격
- 글로벌 시장은 신에츠·섬코·SK실트론 등 소수 기업이 과점
EUV 장비, 노광부터 식각·증착까지
전공정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구조를 파고들면 크게 세 가지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노광(Lithography)으로 그리고, 식각(Etching)으로 깎고, 증착(Deposition)으로 쌓는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하며 회로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이 중에서 노광 공정이 단연 핵심입니다. 일반적으로 장비가 비싸니까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가 좀 더 들여다보니 이건 단순히 가격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노광이란 포토마스크(회로 설계도)에 빛을 쏘아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찍어내는 공정입니다. 여기서 빛의 파장이 짧을수록 더 미세한 회로를 구현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등장한 것이 EUV(극자외선, Extreme Ultraviolet) 노광 기술입니다. EUV란 파장이 13.5 나노미터에 불과한 극도로 짧은 빛을 이용해 7 나노미터 이하의 초미세 회로를 구현하는 기술로, 현존하는 가장 앞선 노광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 EUV 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드는 곳이 네덜란드의 ASML입니다. 대당 가격이 약 2억 달러, 우리 돈으로 2,700억 원이 넘습니다. 무게만 180톤에 달하고, 주문하고 실제로 받기까지 1~2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제가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돈이 있어도 제때 살 수 없다는 것, 그게 얼마나 극단적인 기술 독점인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ASML은 EUV 장비 시장을 100% 독점하고 있고, 이전 세대인 DUV 장비 시장에서도 약 80%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출처: ASML Annual Report).
ASML이 동탄에 지사를 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장비 유지보수와 기술 지원을 위한 거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형 고객사와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노광 이후에는 식각 공정이 이어집니다. 건식 식각은 플라스마 가스를 이용해 수직 방향으로만 정밀하게 깎는 방식으로, 미세 공정에서는 사실상 필수입니다. 이 시장은 램리서치(약 40%),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도쿄일렉트론이 과점하고 있으며, 한국의 TCK는 식각 장비용 핵심 소모품인 실리콘카바이드(SiC) 링 시장에서 약 80%를 점유하며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증착 공정에서는 ALD(원자층증착) 방식이 특히 중요합니다. ALD란 원자층을 한 겹씩 단계적으로 쌓아 올려 두께를 나노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로, 3D 낸드플래시처럼 수백 층을 쌓는 구조에서는 이 기술 없이는 균일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여겼던 후공정, AI 시대의 주역이 되다
후공정은 그냥 완성된 칩을 잘라서 포장하는 과정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 인식이 크게 틀렸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후공정은 EDS(Electrical Die Sorting) 테스트, 패키징, 최종 검사로 이루어지는데, 특히 첨단 패키징 기술이 AI 반도체 성능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됐습니다.
여기서 EDS란 웨이퍼 상태에서 각 칩이 전기적으로 제대로 작동하는지 전수 검사하는 공정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서 정상 작동하는 칩의 비율을 수율이라고 하는데, 삼성이나 SK하이닉스 실적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그 수율이 바로 여기서 결정됩니다.
패키징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기술은 HBM(고대역폭 메모리, High Bandwidth Memory)입니다. HBM이란 여러 장의 D램 칩을 TSV(실리콘관통전극) 방식으로 수직으로 쌓아 연결한 고성능 메모리로, 기존 방식 대비 데이터 전송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기술입니다. AI 가속기인 엔비디아 GPU에 HBM이 탑재되면서 수요가 폭발했고, SK하이닉스가 HBM3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전공정 미세화가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이제는 칩을 어떻게 쌓고 연결하느냐, 즉 패키징 설계가 성능 향상의 새로운 돌파구가 된 것입니다. 한미반도체가 HBM 제조 핵심 장비를 공급하며 영업이익률 40%대를 기록하고, 테스트 소켓 분야의 리노공업 역시 40%가 넘는 이익률을 내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 수익성은 독점적 기술력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EUV 장비를 ASML만 만드는 이유가 뭔가요?
A. 단순히 기술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ASML을 중심으로 독일 칼자이스가 초정밀 반사경을, 트럼프가 레이저 광원을 독점 공급하는 생태계가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됐습니다. 어느 한 기업이 따라 하려 해도 이 공급망 전체를 복제해야 하는 구조라, 사실상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술만 있으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가 살펴본 바로는 이 생태계 자체가 최대의 방어막입니다.
Q. 반도체 수율이 뭔가요? 왜 중요하다고 하나요?
A. 수율은 웨이퍼 한 장에서 정상 작동하는 칩이 몇 퍼센트나 나오는지를 나타냅니다. 100개를 만들어 70개만 쓸 수 있으면 수율 70%입니다. 수율이 낮으면 같은 투자로 더 적은 칩을 팔게 되니 수익성이 직격탄을 맞습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실적 차이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숫자가 바로 이 수율입니다.
Q. 후공정이 왜 갑자기 중요해진 건가요?
A. 전공정 미세화, 즉 회로 선폭을 더 얇게 만드는 작업이 물리적 한계에 근접했기 때문입니다. 원자 몇 개 수준의 선폭에서는 전자가 터널링 현상으로 새어나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관심이 "어떻게 더 작게 만드느냐"에서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쌓고 연결하느냐"로 이동했고, 그 해답이 HBM과 칩렛 같은 첨단 패키징 기술입니다.
Q. ASML이 한국 동탄에 들어온 이유가 뭔가요?
A. 삼성전자 화성·평택 공장과 SK하이닉스 이천·청주 공장을 빠르게 지원하기 위한 거점입니다. EUV 장비는 가동 중 이상이 생기면 즉각 대응해야 하는데, 네덜란드에서 엔지니어가 날아오면 시간과 비용 손실이 막대합니다. 장비 제조보다는 유지보수와 기술지원 허브 역할이 핵심입니다.
결론
반도체 뉴스가 나올 때마다 "또 삼성이 어쩌고, 하이닉스가 저쩌고"로만 들렸는데, 이번에 8대 공정을 직접 정리하고 나니 그 맥락이 완전히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EUV 장비 수출 규제 뉴스가 나오면 중국이 7 나노 이하 공정을 못 한다는 이야기이고, 수율 개선 소식이 나오면 같은 웨이퍼에서 더 많은 정상 칩을 뽑아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렇게 딱 들어맞는 분야도 드문 것 같습니다.
반도체가 한국의 핵심 수출 산업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안에서 웨이퍼 공급사부터 소켓 제조사까지 얼마나 촘촘한 생태계가 움직이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 경우엔 이번 정리를 계기로 관련 기업들의 실적 공시나 IR 자료를 직접 읽어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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