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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가 한국을 따라잡았다는 말,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CXMT가 상장 첫날 중국 공상은행을 제치고 중국 증시 시가 총액 1위에 올랐다는 뉴스, 그리고 그 규모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시총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소식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단순한 추격이 아니라, 이미 게임 판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국 증시 시가총액 1위, CXMT는 어디서 왔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저는 생소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회사는 2025년 7월 상하이 증시에 처음 상장했으니까요. 그런데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466% 폭등하며 중국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랐습니다. 포드자동차 시가총액의 7~8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하면 감이 오실 겁니다. 제가 숫자를 다시 확인해봤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못 미치지만, 한국의 웬만한 비반도체 대기업 시총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입니다.
이 회사의 본거지는 중국 안후이성의 허페이(합비)입니다. 삼국지에서 장료가 손권의 공격을 막아낸 도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한데, 현대에 와서는 대형 LCD 공장이 들어서며 정밀 전자 소재 가공 인력과 인프라가 쌓인 도시입니다. 이 지역은 과거 한국의 LCD 업체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산이 중국 기업으로 넘어간 사례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CXMT의 반도체 사업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허페이가 정밀 전자 소재와 장비 인프라를 오래전부터 축적해온 도시라는 배경을 보여줍니다.
허페이 지방정부는 2010년대 들어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직접 밀기 시작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DRAM)란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현재 처리 중인 데이터를 임시로 저장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으로 치면 '작업 중인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입니다. 중국이 이 분야를 노린 이유는 단순합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제조사가 달라도 규격만 맞으면 어느 기기에나 끼워 쓸 수 있는 범용 부품이라, 품질과 가격 경쟁력만 갖추면 시장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설립 연도: 2016년, 허페이(합비) 기반
- 상장: 2025년 7월, 상하이 증시 — 첫날 공모가 대비 +466%
- 시가총액: 포드자동차의 7~8배, 한국 비반도체 대기업 상회
- 핵심 제품: LPDDR5, LPDDR5X (스마트폰·노트북용 저전력 메모리)
두 번의 치킨게임이 만들어낸 지금의 판세
일반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기술력이 곧 가격 경쟁력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분야 역사를 조금 더 들여다보니,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변수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치킨게임(chicken game)입니다. 여기서 치킨게임이란, 두 경쟁자가 서로 절벽을 향해 차를 몰다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방식의 출혈 경쟁을 말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판에서는 이게 가격 전쟁으로 나타납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제1차 메모리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DRAM 가격은 개당 6~8달러에서 0.5달러 수준까지 폭락했습니다. 제가 당시 관련 뉴스를 찾아봤는데, 대만의 한 반도체 회사가 매출 5,900억 원에 손실이 똑같이 5,900억 원이었다는 기록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물건을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였던 겁니다. 이 싸움의 패자는 독일의 전통 메모리 기업 키몬다(Qimonda)였습니다. 2009년 파산후, CXMT는 키몬다의 DRAM 특허와 핵심 인력 일부를 확보했고, 독일 본사 출신 수석 엔지니어까지 영입하며 기술 기반을 다졌습니다. 당시엔 망한 회사 기술을 사봐야 뭘 하겠냐는 시선이 많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게 기술 비경합성을 노린 장기 포석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제2차 메모리 반도체 치킨게임이 터졌습니다. 이번엔 3달러대 DRAM이 1달러 아래로 내려갔고, 이 싸움의 패자는 일본의 엘피다(Elpida)였습니다. 이 두 번의 치킨게임을 거치며 글로벌 메모리 시장은 사실상 한국 두 회사의 과점 체제로 굳어졌습니다. 세계 DRAM 공급의 약 70%를 한국 두 업체가 담당하는 구조입니다(출처: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그런데 바로 이 과점 구조가 CXMT에게 틈을 열어줬습니다. AI 열풍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슈퍼사이클이 왔고, 한국 기업들의 제품 가격이 크게 올랐습니다. 시장 선점 업체가 오랫동안 가격을 낮게 유지해 경쟁자 진입을 막아왔는데, 수요 폭증으로 가격이 올라가자 그 방어막이 걷혀버린 셈입니다. CXMT 기술 수준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가격대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여러 연구기관에서 나왔습니다(출처: Innovation, Science and Economic Development Canada). 제 경험상 이런 구조적 변화는 단기 이슈가 아니라 판 자체가 바뀌는 신호로 읽힙니다.
LPDDR과 기초과학, 중국의 진짜 무기는 따로 있다
CXMT가 현재 생산하는 제품은 LPDDR5와 LPDDR5X입니다. 여기서 LPDDR이란 Low Power Double Data Rate의 약자로, 저전압에서 구동되는 고속 메모리 규격을 의미합니다. 일반 DDR 메모리보다 소비 전력이 낮아 스마트폰, 노트북, 웨어러블 기기에 주로 쓰이는 방식입니다. LPDDR5X는 최대 10.7Gbps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지원하는데, 쉽게 말해 30초 안에 풀HD 영화 10편 분량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속도입니다. 이 규격이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탑재되고 있는 제품입니다. CXMT가 이걸 만들어낸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세계 정상급 라인에 진입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제가 더 인상적으로 본 부분은 기술 스펙이 아니라 중국의 기초과학 투자 역사입니다. 중국은 1960~70년대에 이미 '양탄일성(兩彈一星)' 프로젝트를 완수했습니다. 양탄일성이란 원자폭탄, 수소폭탄 두 가지 핵무기와 인공위성 하나를 자력으로 개발하겠다는 국가 목표를 말합니다. 실제로 중국은 1970년에 첫 인공위성 '둥팡훙 1호'의 자력 발사를 성공했습니다. 한국이 누리호 자력 발사에 성공한 것이 2022년이니, 기초과학 역량에서 반세기 이상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이게 반도체와 무슨 관계냐고 할 수 있는데, 제 생각엔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현재 시스템 반도체의 기반은 1960년 한국계 미국 과학자 강대원 박사가 발명한 MOSFET(금속산화물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구조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MOSFET이란 전압으로 전류 흐름을 제어하는 소자로, 오늘날 거의 모든 반도체 칩의 기본 구성 단위입니다. 중국은 이 MOSFET을 대체할 완전히 다른 원리의 소자, 예컨대 터널링 전계효과 트랜지스터(TFET) 같은 차세대 소자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투자 규모나 구체적 성과는 확인 필요)
일반적으로 중국이 기초과학보다는 응용과 제조에 강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이 부분을 조금 더 파고들어보니 실상은 좀 달랐습니다. 기술의 비경합성(non-rivalry) 원리, 즉 지식은 나눠줘도 원래 가진 사람의 것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속성을 중국은 아주 오랫동안 의식적으로 활용해왔습니다. 독일 키몬다의 파산 기술 인수는 이 원리에 근거한 전략으로 읽힙니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한국 LCD 업체 자산 인수 CXMT와는 별개의 사례입니다.) 한 번 습득한 기술을 내부에서 인력 네트워크를 통해 퍼뜨리면, 단순히 돈을 투입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기술 축적이 이뤄지니까요.
결론
이 내용을 정리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중국의 반도체 추격을 단순히 '가격 덤핑'이나 '기술 도용'으로만 보는 시각이 이미 시효를 넘겼다는 점입니다. 10년 넘게 적자를 감내하며 버틴 뒤 흑자 전환을 이뤄낸 CXMT의 경로는, 한국이 1980년대 일본 반도체에 도전하던 궤적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진짜로 신경 써야 할 지점은 지금 당장의 기술 격차보다, 중국이 기초과학과 기술 비경합성 전략을 통해 쌓아온 저변이라고 봅니다. CXMT 하나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줄줄이 대기 중인 인력과 기술 생태계를 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적 변화는 단기 뉴스로 소비하기보다 흐름으로 읽는 것이 훨씬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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