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직주근접이면 무조건 오른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장 근처로 이사해 놓고 보니, 정작 자녀 학교 문제 앞에서 그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2010년대를 주도했던 직주근접 트렌드가 서서히 힘을 잃고, 학군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직주근접이 부동산을 바꿔놓은 10년
직주근접(職住近接)이란 직장과 주거지의 물리적·시간적 거리를 최소화하는 주거 전략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한 km 거리가 아니라 실제 출퇴근 소요 시간입니다. 같은 5km라도 교통 혼잡에 따라 30분이 될 수도, 1시간이 넘을 수도 있거든요.
출퇴근 시간이 왕복 1시간 줄어드는 것만으로 삶의 밀도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그 시간이 독서가 되든, 아이와의 저녁 식사가 되든,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가 있었습니다.
2010년대에 이 흐름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북아현 뉴타운입니다. 애오개·아현·이대역 일대, 그러니까 광화문·여의도·강남 세 업무지구를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신축 대단지가 들어서면서 마포 일대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던 시기와 정확히 맞물렸고, 마포래미안푸르지오는 그 시대의 상징이 됐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하락할 때도 직주근접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폭이 작거나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수요가 꾸준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입지(立地), 즉 부동산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개념의 핵심입니다. 입지란 단순히 '좋은 동네'가 아니라, 그 땅이 가진 수요의 지속성을 의미합니다.
학군지가 뜨는 이유, 인구 감소 때문입니다
"인구가 줄면 학군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 저도 한동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직접 따져보고 나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능 응시 인원은 제가 시험을 치던 2000년대 초반 60~70만 명에서 지금은 2025학년도 기준 40만 명대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 합격선은 그대로입니다. 인구가 절반이 된다고 해서 손흥민 수준 절반의 실력으로 손흥민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경쟁의 절대 강도는 상위권 자리의 수가 결정하는 것이지, 전체 인구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인구 감소는 학군지 집중 현상을 심화시킵니다. 학원은 산업입니다. 모든 산업에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가 작동합니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단위당 비용이 낮아지는 원리인데, 학원 입장에서 보면 수강생이 많아야 강사 수준도 올라가고 커리큘럼도 다양해집니다. 인구가 줄면 학생이 적은 지역의 학원은 수익성이 맞지 않아 문을 닫고, 학생이 몰려 있는 학군지로 자원이 집중됩니다.
실제로 대치동에서도 "공부 잘하는 아이는 송파에서 대치동으로 가라"는 말이 나오는 게 이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오히려 용산의 특정 초등학교가 과밀학급이 됐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입니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찾아 부모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0.7명대(출처: 통계청)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이 집중화 현상은 앞으로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메가스터디가 등장하며 "온라인이 학원을 대체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게 200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났지만 대치동 학원가는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온라인 강의는 자기 주도 학습이 가능한 학생에게는 유효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여전히 오프라인 환경과 또래 집단에서 더 큰 동기를 얻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치동·목동 재건축, 학군지 신축의 파급력
학군지가 강한 이유는 학교 하나 때문이 아닙니다. 학군지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 동네 자체의 생활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흥 시설이 없고, 거리가 안전하고, 주민들의 생활 방식, 이른바 아비투스(Habitus)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다는 느낌. 아비투스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으로, 특정 계층이 공유하는 생활 습관과 취향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가정이 밀집한 곳에서 자녀를 키우고 싶다는 욕구는 인구와 무관하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여기에 재건축 이슈가 더해졌습니다. 강남 일대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고, 목동도 신속통합기획 심의를 통과하며 재건축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신속통합기획이란 서울시가 정비계획 수립부터 인허가까지 통합 지원해 재건축 기간을 단축시키는 제도입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재건축 이슈가 있는 지역은 일반 노후 단지 대비 프리미엄이 평균 20~30% 높게 형성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부동산원).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신축 아파트가 가격을 주도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신축이 들어서면 가격이 오르고, 그 상승분을 매각해 더 좋은 학군지로 이동하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그런데 대치동과 목동 자체가 신축 단지로 바뀐다면, 그 이동의 종착지가 바로 그곳이 됩니다. 학군지에 신축 프리미엄까지 더해지는 구조입니다.
학원비를 지출하는 대신 학군지 아파트에 자산을 묶어두는 게 낫다는 주장도 시장에 종종 나옵니다. 처음 들었을 땐 지나치게 자산 중심적이라고 느꼈지만 지난 20년간의 자산 흐름을 보면 왜 이런 주장이 나오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전체 인구 감소가 곧 학군지 수요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살펴본 흐름은 반대였습니다. 학생 수가 줄어들수록 질 좋은 학원과 교육 인프라가 소수 학군지로 더 집중되는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생합니다. 유의미한 학군지의 수 자체가 줄어드는 셈이라, 남은 학군지의 희소성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습니다.
직주근접은 여전히 강력한 수요 기반입니다. 다만 2010년대처럼 학군 여건이 부족한 직주근접 지역이 프리미엄 지역으로 부상하는 흐름은 약해지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직주근접에 학군이나 생활 인프라가 함께 갖춰진 지역이 더 강한 가격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2010년대를 직주근접이 이끌었다면 2020년대 이후에는 학군지가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구 감소는 학군지를 약화시키기보다 규모의 경제 논리에 따라 오히려 집중화를 심화시키고, 대치동·목동 재건축의 경우 신축 프리미엄까지 더하면 그 흐름은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5~10년의 긴 사이클에서 보는 개인적인 시각이며, 특정 지역이나 단지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 단기 시세나 개별 단지는 전혀 다른 변수들이 작용합니다. 어떤 지역을 볼 때 학군이라는 렌즈를 하나 더 얹어서 보기 시작하면 시장이 다르게 읽힌다는 정도입니다. 매수 타이밍이나 개별 단지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같이 보면 좋은 글
1. 오산 아파트의 미래를 알아보자 (미분양, 반도체 배후수요, 공급공백)